당산 은행나무 소재 : 영등포구 당산동 11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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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동 110번지 언덕에 수령 500년이 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약 500년간 조선초 어느왕이 언덕을 지나다가 쉬었던 기념으로 당산동 110번지에 은행나무 두그루를 심었다 한다.
그 후부터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마을의 안녕과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왔다.
6.25동란 후 이중 한그루가 소실되어 한 그루만 남아 있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약 30년 전에 행정당국에 건의하여 그 옆에 한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현재는 두그루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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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율도) 소재 : 영등포구 여의동 한강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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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이라 이름한 마포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곳은 조선업과 감초등 약재와 뽕나무를 심어 유명하였으며, 율주 또는 가산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이 섬이 두개의 섬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로 강물이 흘러 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도학 체제에는 남녀 관계를 악덕시 하는 풍조였으나 명조실록 11년 4월 기록을 보면 이 밤섬만은 자유분방한 지역으로 이 섬의 남녀들은 서로 업고 업히고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아 동성동본이고 반상이고 따지지 않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밤섬 한복판에 암수 은행나무 고목이 서있는데 금슬목이 되어 사랑하고 싶은 남녀가 와서 빌면 소원 성취가 되고, 불화한 부부가 와서 빌면 화목해 진다하여 성안에서 기도꾼들이 몰려들었다 하였으며, 또 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목이기도 하였다 한다.
또한 이 섬마을은 도둑이 없고, 집병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모실 수 있는 부군신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8년 여의도 개발 계획에 따라 밤섬은 폭파되어 흔적만 남아있고, 그때까지 거주하던 63가구 400여명의 주민은 창천동으로 이주 하였다.
현재는 철새 도래지로 보호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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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거리 소재 : 영등포구 도림2동 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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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옛날에 인천으로 가는 길목으로 주막이 많이 있어 주막거리라 하였다.
옛날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강도나 도둑이 심해 저녁에 이곳을 지나게 되는 상인등 나그네는 반드시 이 주막거리에서 여장을 풀었다고 하였다.
또한 이 거리는 세태를 반영하는 민요인 창부타령등 경기잡가가 널리 유행되었던 지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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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 소재 : 영등포구 신길동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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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 마을 신길리에는 들 가운데 십자형의 강이 있고, 그 강으로 인천, 김포, 한강을 경유하며 어선이 많이 왕래하였는데, 배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부둣가 언덕의 고목인 굴참나무가 성황당이 되어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또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 도당을 지어 산신을 모신 것은 약 380년전부터라 한다.
러나 현재의 당집은 1949년에 건립된 것이라고 상량문에 기록되어있다.
이 당집은 벽돌조 한식 기와로 당내부는 무렴이 쳐있고, 그 안에 탱화가 있으며, 탱화밑에 탁자로된 제단과 제구가 놓여있다.
천장 오른쪽에는 [응천상지삼광비민간제오복]이라 쓰여있고, 신상은 산신으로 도당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의 화사를 모셔 놓았다.
현재의 신상은 몇해 전에 도난당하여 다시 그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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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잎느티나무 소재 : 영등포구 양평동4가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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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시대에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회의 선교사인 아펜젤러 부부 세사람이 1885년 4월5일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인천항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26세의 청년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한편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전국을 찾아다니며 한국인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전도 생활을 하였다.
그가 한국에 상륙한지 18년째되는 1903년에 영등포 최초의 교회인 영등포 장로교회를 설립한 후 교세가 점진적으로 확장되자 1907년에는 양평리에 사는 김준기 등 한국 신도들과 함께 양평동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이곳에 교회 설립기념으로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휘귀수목인 둥근잎 느티나무를 심었다.
현재 수령 약 90년 되는 이 나무를 서울시에서는 시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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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고지고개 소재 : 영등포구 신길2동 영등포여중 정문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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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여자중학교 정문옆 고개인 밤고지 고개는 다음과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일제때 이 동네 살았던 한 일본인이 죽자 장사를 치르느라 일본인들이 상여를 옮기기 위해 이 고개를 지나게 되었는데 장례행렬이 이 고개마루에 도착하자 행렬속의 말발굽이 따에 들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놀란 일본인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비는등 갖은 노력끝에 2일만에 겨우 말굽이 떨어졌다 하여 밤고지고개라 하였다.
지금도 이마을 주민들은 상이 나더라도 이 고개를 지나지 않고 옆길로 돌아서 상여를 운반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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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곳지 부군당 소재 : 영등포구 신길2동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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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흰모래 사장과 언덕에는 소나무등 나무가 무성하고 경치가 빼어나 학이 놀다가는 곳으로 방학동이라고도 하고, 성안으로 실어가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이 있다 하여 방아고지라고 불렀던 곳이다.
그리고 이곳의 당을 방학곳지 부군당이라고 불렀다.
이 당은 약 300년이상 되었는데 6.25동란때 대부분이 파손되었던 것을 동란후 주민들의 힘으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윤정승의 물난리로 물에 빠져 정신을 읽었을 때 잉어가 나타나 등에 태워서 방아고지 기슭의 모래밭에 내려주어 살아났다고 하여 윤정승이 당을 지어 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이 마을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매년 음력 4월 1일과 7월 1일, 10월 1일 3번씩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내에는 정면에 부군할아버지와 부군할머니를 증앙으로, 우측에 유씨부인, 좌측으로 군응할머니, 상불성님을 모셨고, 우측벽면에는 삼신할아버지, 할머니와 부군대감, 맹인할아버지를 모셨으며, 좌측벽면에는 대신 할머니와 백미장군을 모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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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바위와 귀느티나무 소재 : 영등포구 신길동 24번지 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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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대로변 여의도 샛 강가에 있는 큰바위 아래로 강물이 흘렀는데 수심이 깊어 이 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주위풍경에 도취되어 실수로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많아 바위에 귀신이 붙었다고 하여 귀신바위라고 불렀다.
또 바위 옆에는 수령 00년이 되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1790년대 정조때 왕비가 이곳을 지나다 주위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쉬어갔던 기념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수로 믿어 마을의 재앙을 막고 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1년에 한번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여의도 개발로 절반쯤 묻힌 바위와 느티나무가 서있어 그때를 연상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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